11.03.31

카메라가 고장났습니다. 셔터가 터질 생각을 않네요. 셔터막도 엉망이고 스펀지도 너덜너덜.. 이라니 누구나 오랫동안 묵혀놨다고 생각할 법하지요. 사실 그 동안 몇십 롤의 필름이 들어갔다가 나온 녀석인데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병원에 갔어요. 청계천에 있는 태양사에 가니 소문대로 신사적인 할아버지께서 이마에 동그란 확대경을 끼고 작업대에서 다른 카메라를 손보고 계십니다. 얼마 전에 안성기님과 이하나씨 주연의 <페어 러브>를 봤는데 안성기씨가 맡은 역이 카메라 수리공이었어요. 사실 카메라가 소재로 나온다는 이유로 본 영화였는데 영화상에서 카메라 수리공이 작업하는 모습이 참 신기하더랍니다. 그런데 오늘 그 광경을 직접 보았으니 그 느낌은 감회가 남달랐다고나 할까요, 작업대 위에서 철제 옷을 벗고 복잡한 회로가 드러난 채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엄마 앞에서 목욕 순서를 기다라는 때묻은 꼬마들이 떠올라서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녀석을 영감님께 맡기니 한참을 보시면서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시더니 카메라가 너무 오래돼서 "쩔어"있다고 하시더군요.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요. 아무리 제 손에 들어온지 3년이 됐다 해도 막 굴린 것도 아니고 창고에 쳐박아둔 것도 아니고 자주 찍어줬는데 "쩔었"다니.. 내가 내 카메라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_= 카메라 수리점만 해도 미슈 데려오고 나서 처음이니.. 반성중입니다;;
그래도 생각지도 못했던 저렴한 가격에 손봐주시겠다고 하시니 감사할 따름.. 예쁘장하게 손질된 모습이 기대가 되는군요.
그나저나 기억력 나쁜 탓에 다른 역으로 갔다가 급하게 바른 길로 되돌아가는바람에 부츠를 신고 뛰었더니 발바달에 물집이 생길듯... 누구 말마따나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합디다ㅠ

iPod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