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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3 그해 겨울은...

 2007년 겨울, 대학생활의 기회이자 중요한 방학, 그것도 한창 시간을 잘 투자했어야 할 2학년 겨울방학에 난 무엇을 했나..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온다고 하는 절망의 구렁텅이(앤의 말을 빌리자면)에서 허우적거렸다.

 우선은 고뿔에 심하게 걸려서 거의 한달을 이불 안에 있어야 했었고, 그 다음에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게 하는 사건이 터져서 거기에다 갑자기 사람 보기가 싫어져서 외부와의 연락을 일체 끊었었다. 처음엔 아주 사소한 문제로 시작한 히키코모리짓(!)이었는데 나중에는 근원적인 문제에까지 내려가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심하게 고민했었다. 친구 말로는 오춘기라는데, 뭐, 다른 사람들도 이런 고민을 했겠거니 싶다. 난 좀 늦게 온 건가, 암튼,,,,

 그리고 외부와의 연락을 끊으려고 하는 찰나에 아는 친구와 연락이 되었는데 그 친구때문에 속이 좀 많이 썩었다. 솔직히말하면 그게 그렇게 성가실만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근데 그때 심신이 너무 약해진 탓에 문자도 받기 싫고 전화도 받기 싫었다. 그런데 그게 좀 힘들었던게 그친구가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보통 있는 문제때문이 아니고 나한테도 중요한 문제였던 걸 그친구도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친구를 끊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결국에는 그냥 내팽겨쳐버리고말았다. 이런 무책임한=_=; 여튼 그때로서는 그친구의 연락도 심히 부담되고 어떻게 해야할지, 내가 이친구를 더 망치지나 않을지 그 생각에 더 괴로웠던 기억이..

 여튼 다시 그 전 문제로 돌아와서, 그래, 방안에 틀어박혀서 내가 어떤 존재이고 사람이 어떤 존재이고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게 뭣때문인가, 뭘 위해서 무슨 목표를 세우고 하나, 그 목표가 허황된 것은 아닌가, 에 대해서 하루종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사실 그런 문제에 대해서 항상 배우고 있었지만, 머리로만 받아들여서 이 문제가 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정신을 차릴 무렵, 2월 마지막주 목요일, 그날 이후로 좀 정신차릴만하다고 느껴서 결국엔 사람에게서 그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해답은 다른 곳에 있었다. 너무도 뻔한 곳에. 그걸 알고 있는데도 다른데서 헤맨 나를 보면 한심스럽고 때려주고싶고 그렇다. 항상 나를 멀리서 바라보면 정말 바보같다.

 또 한가지 생각한 것이 있는데 그건 공적으로 떠벌리기가 부끄럽기도 하고 좀 그렇다.

 그래서, 이번 방학의 이런 경험들이 유익이 있었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근데 오랜동안 혼자 있고 혼자라고 생각하고 좀 적대적인 마음을 품다보니 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내 모습의 초라함이 계속 머리에 맴맴 돌아서 개강한지 1주일이 다되가는데도 뭔가 불편하고 불안하고 그렇다. 이렇게 될줄 알고 그래도 개강 전에 친구들도 만나보고 밖에 나가서 산책도 해보고 사진도 찍어 봤는데 내가 좀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잠수 후에는 잘 웃게 되지도 않고, 나에 대한 호의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 버리고, 친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마치 나 혼자 사는 것처럼.. 에이 미안허네.. 안그럴게..

 마지막으로 이젠 날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뭐든 나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나는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랜다. 나도 사람이니까. 필요하다. 야릇한 연애감정따위로 사귀는 사람이 아닌 정말로 속을 다 터놓을 수 있는 사람, 사람을 사귀다 보면 결국 갈길이 다르기 때문에 떨어져야 한다는 마음아픈 생각이 많이 드는데 그렇지 않은,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나보다 강한 사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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